대학교수가 가르쳐 주지 않는 건축공학과의 진로 이야기(건설회사)

SOCIAL/- Investment|2018. 1. 23. 11:32


내가 처음 건설회사에 입사했을 때 직장상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는데, 복사만 시켜서 '아~ 내가 이럴려고 대학까지 나왔나.' 라고 하는 이야기 들어봤지?

그게 왜 그러냐면, 네가 여기서 할 줄 아는게 없어서야. 아니 할 줄 아는게 없다기 보다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런거야.

그게 네가 대학에서 쳐 놀아서 그런거냐? 그런건 아냐. 요즘 애들 다 그래. 네 잘못이 아니라, 대학에서 배운 것을 실제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게 거의 없어서 그런거야.



이 말은 "요즘 대학에서는 뭘 가르치나 몰라."라는 말과 결국은 일맥상통 한다.


그럼 뭐가 어떻게 다를까.


나는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는데, 결론적으로 당시 그 상사가 내게 했던 말은 전적으로 옳았다.  

갓 입사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복사 같은 일들을 내게 시키지는 않았다.


보통 많은 학생들이 건축학과 혹은 건축공학과에 들어오는 이유는 수능 성적을 맞춰 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짓고 싶어서' 이다.

그런 원대한 꿈을 짓밟는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돈 잘버는 학과로 가서 모은 돈으로 집을 사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롭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축공학과에 입학하면 당연히 건설에 대해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게 된다.

구조역학, 재료, 시공방법 등등. 

'A 건설 공법의 장단점은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경우에 사용해야 한다'라던지, 

'건축물 내부의 환기 방법에는 기계식, 자연식 등이 있다'라던지..

주구창장 이론을 배운다. 그리고 일반적인 건축공학부 학생들의 대학생활 목표는 '건축기사'자격증의 취득이다.


물론 대학교에서의 4년이라는 짧은 교육과정 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없으므로, 기초 및 어느정도의 심화 이론(공법, 재료 등)만을 다루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며, 이론이 바탕이 되어야 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나면, 특별히 국가 공무원 시험 및 공기업에 지원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1순위로는 건설사에 취직하게 된다.


본사에서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수료하고, 첫 건설현장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그리곤 다짐한다. 열심히 해야지...


그러나 대학에서 배운 것과 실제 건설 현장에서 하는 업무 사이에는 커다란 연관성이 없다.

(적어도 사원, 대리 때는 100% 연관성이 없다.)


Case.1

 온도가 낮을 때는 콘크리트를 타설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A사원은 상사를 찾아갔다.

"저... 부장님. 기온이 너무 낮아서 콘크리트 타설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 타설을 다음으로 연기하거나, 보양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래. A사원이 제대로 알고 있구나."라고 말을 해야 하지만, 상대방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을'의 입장에 놓인지 수십년이 되었고, 오늘 콘크리트 타설을 못하면 공사 스케줄이 며칠씩 밀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또한 이 부장은 한 겨울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것이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는 있지만, 당장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누구 돈으로 할건데? 네 돈으로 할거야?"  혹은 "준공 못하면 네가 책임질래?"

라는 말이 나올 확률이 높다. 


그리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동안에는 이른바 '콘크리트 잔량'을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가령 가로세로 50미터에 높이 40센치짜리 바닥판을 타설한다고 봤을 때, 필요한 콘크리트의 양은(철근 부피 무시) 50*50*0.4 = 1000m3이다. 건설현장 용어로 '루베'라는 단위로 불린다.

그러면 레미콘 회사에 전화를 해서, 1000m3의 콘크리트를 주문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오차가 존재한다. 1000m3로 예상되었던 것이 실제로 1020m3가 된다면 그저 20m3를 더 주문하면 되지만, 이것이 950m3가 되어버리는 순간, 나머지 50m3는 그냥 버리게 되는 것이다. 한번 출하된 레미콘은 다시 돌려보내더라도 그 돈을 다 지불해야 한다. 이미 굳기 시작했으니까. 

 콘크리트 잔량 체크는 많이 경험해서 감각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몇번 안해본 사람들은 과장, 차장이 되도 실수를 한다. 


※ 콘크리트 잔량 체크 실패로, 콘크리트가 남았다고 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1. 사실대로 말하고 욕을 죽을때까지 쳐먹는다.(사람따라 다르지만 아주 x랄맞은 성격의 상사를 만나면 상스런 단어란 단어는 다나온다.)


2. 레미콘 기사한테 말해서 조용히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대학교수들은 실제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맡게 될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을까?


이는 바로 대학교수들의 이력에서 오는 차이 때문이다.

보통 대학교수는 국내외 일류 대학을 석사, 박사까지 마치고 교수직에 임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실무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분이거나 그 마저도 연구 직종에서의 경험뿐이다. 그러니 가르쳐주고 싶어도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한가지의 이유가 더 존재한다. 

 물론 대학교수들도 건축공학과를 졸업하면 건설회사로 가게 될 것이며, 건설회사가 타 직종에 비해 힘들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말을 안해주는 이유는 건축공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 곧 자신의 밥줄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파는 사람이 "우리 떡볶이는 미세먼지에 노출되어 있어서 건강에 안좋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건설회사에 몸 담고 있다. 1번의 이직이 있었고, 10위권에서 소위 말하는 건설사 빅5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금 누가 내게 건설회사 취직에 관해 물어온다면,

친한 사람은 뺨을 때려서라도 말리고, 싫어하는 사람은 건설사로 보내버리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