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순간에 진행한 복수 - 이항열 사건
<가장 행복한 순간에 진행한 복수 - 이항열 사건>
2009년 5월 112 신고센터에 아빠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믿지 못할 전화가 걸려왔다.
장난전화가 아니라고 직감했던 경찰이 즉시 출동하였고, 용의자의 차량에서는 40대 중반 여성의, 아파트 장롱에서는 옷이 모두 벗겨진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항열, 그의 범죄는 1987년부터 시작되었다. 논두렁을 걷고 있던 그에게 수업을 마치고 하교 중이던 여고생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흉기로 여고생을 위협한 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가 성폭행을 하였다. 곧바로 구속된 그는 출감 뒤 1991년, 이번에는 석궁으로 미성년자를 위협한 후 강간하였다. 또 다시 구속된 그는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05년에 재출감하였고 옛 애인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는 이항열과 자신에게서 나온 딸과 별거중인 남편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었다. 이항열은 자신이 아닌 사람에게서 태어난 이 의붓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2009년의 어느날, 이항열과 의붓딸의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이항열은 결국 의붓딸을 주먹으로 폭행한 후, 테이프로 그녀의 손과 발을 묶고 가위로 속옷을 잘라 성폭행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교살하였다.
가족 구성원들간의 살인은 일가족 살인으로 번질 위험이 매우 높다. 이항열 역시 일가족 살인을 계획했다. 그는 동거녀에게 연락하여 마중나가겠다고 하며 밖에서 만남을 가졌다. 차량안에서 정사를 마친 후 그는 또 다시 그녀의 목을 졸라 교살하였다. 그는 나아가 그녀의 친정 식구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운다. 이항열은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당시 여고생이던 처조카(첫째)를 집으로 불러들여 그녀를 테이프로 결박한 후 성폭행을 하였고, 시체는 아파트 장롱 속에 넣었다.
이어 자신과 동거녀 사이에서 난 친딸(20대)이 돌아 왔고, 이항열은 자신의 친딸마저 위협하며 같이 샤워를 하자고 하였다.
하루 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목숨만은 건진 딸의 신고로 이항열은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자신이 복역 중이던 15년 동안 재혼한 옛 애인에 대한 복수를 꿈꿔왔다고 하였으며, 딸(의붓딸)을 살해한 것이 맞냐는 경찰의 추궁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제 딸은 안 죽였습니다. 걔(의붓딸)는 제 딸이 아닙니다.”
- 계속해서 밝혀지는 진실
이항열은 경찰조사를 받는 도중 둘째 처조카 또한 강간 살해한 후 시신을 야산에 유기하였음이 밝혀졌는데, 이 과정에서 둘째 처조카의 실종신고를 제일 먼저 했던 사람이 바로 이항열이었으며, 새로운 핸드폰을 개통한 후 마치 둘째 처조카인 것처럼 속여 가족들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를 전송하였다.
2010년 3월, 이항열은 사형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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