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사기 마케팅] 퀴리 부인과 라듐

SOCIAL/- Historical Events|2018. 1. 9. 08:58




<퀴리 부인과 라듐>





마리 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




  마리 퀴리 부인이 태어났던 시절 바르샤바는 러시아의 통치하에 있었고 러시아는 폴란드 학생에게 물리와 화학을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 이외에도 러시아의 탄압은 점점 심해져만 갔고 폴란드인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퀴리 부인의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큰 언니는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그 당시 유럽은 15세 정도까지 학업을 한 후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폴란드에서는 여성의 대학 진학도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한 속에서도 마리는 열공하였고, 189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1894년 마리는 그 당시 이미 프랑스 과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피에르 퀴리를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함께 연구에 몰두했다.

 


  마리는 첫째딸을 낳은 후 방사선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그녀는 역청 우라늄을 반복 증류 했고, 증류를 반복할수록 방사능은 점점 강해졌다. 그녀의 실험결과로 발견된 새로운 원소의 방사능은 무려 우라늄보다 300배나 높았다. 그녀는 조국을 기리기 위해 조국의 약자인 Po(폴로늄)를 원소기호의 이름으로 붙였다. 이후 계속되는 실험으로 그녀는 우라늄의 900배 방사능 수치에 달하는 라듐을 발견했다.

 


  퀴리 부부는 노벨상 수상으로 명성을 얻었고, 그들은 이 라듐에 들어있는 무한한 에너지가 인류를 위해 사용되어지기를 바랬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라듐은 사업가들에게 좋은 아이템이 되었고, 방사능을 무한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천연 광석으로 둔갑시켰다. 화장품, 물병 등 라듐이 들어간 상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지금에서야 방사능 노출이 인체에 엄청난 해가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방사능 피폭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라듐 초콜렛     라듐으로 제작된 물병



  이러한 피폭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노출된 사람은 바로 퀴리 부부였다. 퀴리 부부는 자전거 신혼여행을 떠날만큼 건강했지만, 나중에 피에르 퀴리는 걷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의사였던 피에르의 부친 또한 갈수록 쇠약해지는 피에르의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피에르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그의 죽음과 방사능을 연관 짓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라듐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은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라듐을 애용하던 백만장자들이 하나둘씩 가뭄 속의 식물과도 같이 시들다 못해 말라 비틀어져가고, 라듐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하나 둘씩 사망하자, 라듐에 대한 대중들의 의구심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사꾼들은 퀴리 부인은 여전히 건강하지 않느냐며 그녀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퀴리 부인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방사능에 수없이 노출된 그녀의 손은 마비되었고, 방사능 빛을 보았던 그녀의 눈은 멀어져 있었다. 


결국 마리 퀴리는 67세로 생을 마감했고, 뒤 이어 연구를 이어가던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남편 또한 방사선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