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할 수 없었던 배의 침몰_타이타닉 호

SOCIAL/- Historical Events|2018. 3. 2. 08:37

 1912년 4월 15일, 새벽 2시 20분경, 약 2200명의 승객과 선원을 태운 영국의 여객선 RMS 타이타닉호(RMS Titanic)가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서 약 400마일 떨어진 북대서양에서 침몰했다. 


 



 4월 10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호화스러웠던 RMS 타이타닉호는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의 뉴욕으로 항해를 하고 있었다. 타이타닉호는 아일랜드의 선박 설계자 William Pirrie가 디자인 하였으며, 건조는 Belfast가 담당했다.


1등실에는 부유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2등실에는 중산층, 3등실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가난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 중에서...>


  출항 후 사흘째 되던 날,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하였다. 당초 승객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타이타닉호가 절대 가라앉지 않는 'Unsinkable'로 홍보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고 직전, 근방의 다른 배들이 라디오 통신을 통해 빙산의 존재를 알려왔으나, 그들의 메시지는 타이타닉호의 선장에게까지 닿지는 않았다. 밤 11시 40분, 빙산의 존재를 인지하였으나, 이미 너무 늦은터였다. 정면 충돌은 피했지만, 빙산은 타이타닉호의 우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몇 분 후, 선원들은 SOS를 요청하고, 승객들을 구명 보트(구명정)이 있는 곳으로 가도록 지시했다. 

불행한 사실 1. 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절반에 해당되는 양의 구명정이 있었다. 

불행한 사실 2. 3등실 승객들의 대부분이 선상에 도달하지 못한 채 수장되었다.

(이 사건은 모든 배의 구명정 수는 승객의 수를 반영해야 한다는 계기가 된다.)



<타이타닉호 성별에 따른 사망자 수>

어린이

여성

남성

 1등실

1

4

118 

 2등실

0

13 

154 

 3등실

52 

89 

387 


 구명정의 부족으로 인해 15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약 700명 가량의 생존자 대부분은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 이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은지 1시간 20분 후,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카르파티아호(Carpathia)가 사고현장으로 달려와 구명정 위에 있던 생존자들을 구조하였다. 


1985년, 오랜 시도 끝에 북대서양 해저에서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찾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

-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사고당시 타이타닉호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곳에 '캘리포니안'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날, 통신 운영자가 근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이타닉호의 조난 신호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영국과 미국의 뉴스 헤드라인 비교)

- 4월 16일, 영국 런던의 데일리 메일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였으나 사망자 없음.'

- 4월 15일, 미국 뉴욕 헤럴드 '타이타닉호. 1800명의 승객과 함께 침몰, 오직 675명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