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민주화의 영웅_ 레흐 바웬사
1980년 폴란드는 높은 물가에 비해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파업이 성행하였다.
조선소의 지도자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 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 및 독립노조 설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장려하였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초창기의 노동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시위 활동에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 7월, 용접공이자 크레인 기사였던 故안나 발렌티노비츠(anna walentynowicz)가 반체제 활동을 이유로 해고되면서, 노동자들은 그녀의 해고에 반발해 1980년 8월 14일 파업선언을 하였다.
곧이어 파업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노동자들은 노조 설립 및 파업 권리 등 21개 항목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안나는 복직되었으며, 그녀는 노조 신문의 편집원으로 활동했다.
파업을 선언하는 레흐 바웬사
파업은 폴란드 경제 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에도 커다란 데미지를 주었다. 결국 8월 31일 폴란드 정부는 독립 노조를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였는데, 이는 동유럽 국가로써는 최초였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는 입장을 바꾸어 계엄령을 선포했고, 1981년 12월 11일, 레흐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 지도자들을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노조단체는 이미 불법단체로 찍혀있었고, 노동자들은 다시 주 6일의 노동 의무를 부여받았으며, 모든 탄광이 군인들의 통제 아래에 놓였다.
이후 1982년 11월, 레흐 바웬사는 석방되었다. 이어 1983년 10월 5일, 바웬사는 노동자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폴란드 경제는 최악의 시기를 겪게 된다. 높은 물가로 인해, 1988년 바웬사는 다시금 시위대 '솔리다리티'를 조직했고, 솔리다리티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날로 높아져 갔다. 결국 폴란드 정부는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솔리다리티와 협상을 하였으며, 이 결과로 노조가 합법단체로 인정되었고 폴란드 정부는 노동자에 대한 자유를 약속했다.
1990년 12월 레흐 바웬사는 노동자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폴란드 대통령에 당선되어 5년간의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임기중이던 1994년 폴란드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레흐 바웬사(왼), 故 김영삼 대통령(우)
레흐 바웬사의 일대기는 <바웬사, 희망의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제작되기도 하였다.
영화 <바웬사, 희망의 인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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