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SOCIAL/- Historical Events|2018. 2. 3. 22:18

본명 아녜저 곤제 보야지우(Anjezë Gonxhe Bojaxhiu)




  수녀원에서 교사로 일하던 마더 테레사는 '수녀원을 떠나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는 하느님의 사명을 따르기 위해 1948년 기초 간호학을 이수하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 였던 인도의 콜카타(옛 명칭 캘커타)의 빈민가로 들어갔다. 마더 테레사는 수녀복 대신 흰색 바탕에 푸른색 띠가 있는 옷을 입었는데 이는 훗날 '사랑의 선교회' 복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 선교회는 콜카타 시에서 순례자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는데, 이를 본부로 사용하였다.

마더 테레사에게도 가끔 예전의 수녀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녀는 신념을 회복하고,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에게는 오직 가난한 자들 뿐이었다. 


1950년 테레사는 교황에게 배고프고, 벌거 벗은, 머물 곳 또한 없고, 사회에서 짐짝으로만 취급되는 이들을 위한 기독교 계통의 비정구기구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1952년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돌봐주는 호스피스 요양원 'Place of Pure Heart(벵갈어 Nirmal Hriday)'를 개설하였다.


사랑의 선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테레사는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1955년에는 90명의 어린이들이 살수 있는 공간인 (시슈 브하반),

1968년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평화의 마을(Shanti Nagar)'를,

1975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선물(Prem Dan)'이라는 요양소를 설립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 콜카타에서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한편 1948년 홀로 테레사 혼자 시작했던 사랑의 선교회는 2012년 기준 전 세계 4,500명 이상의 수녀들이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