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육을 먹으며 삶을 이어온 남자_난도 파라도

SOCIAL/- Historical Events|2018.02.22 18:15


 1972년 10월, 우루과이의 럭비 선수였던 스무살 청년 난도 파라도(Nando Parrado)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될 친선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에는 난도의 어머니 유제니아와 여동생 수사나도 함께 탑승했다. 안데스 산맥을 비행한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 멘도사에 임시로 머물게 되었다. 비행기의 조종사들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다음날 비행을 해야할지를 고심하고 있었으나, 하루 빨리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던 선수들의 닦달로 인해 비행을 결정한다.


플란천 항로를 따라 비행하던 비행기를 난기류로 인해 4번이나 크게 흔들렸으나, 들끓는 피를 가진 젊은 럭비 선수들에게는 그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비행기는 수백 미터를 급강하했다. 더 이상 웃는 사람은 없었다. 조종사들은 고도 상승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비행기는 산 중턱에 충돌하고 말았다.


 충돌 3일 후 난도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뼈와 살이 분리된 사람들, 신체 장기가 튀어 나온 사람, 비행기 잔해에 끼인 사람.


 그의 어머니는 즉사 하였으며, 여동생 수지 또한 내출혈과 동상으로 인해 생존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고지대에 추락한 탓에 산소는 부족하였으며, 눈으로 뒤덮인 산 꼭대기에서 음식을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TED 연설 중인 난도 파라도


 그들은 각자의 배낭 속에서 음식들을 모아 소분배해서 연명했지만 식량은 일주일만에 동이 났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식량이라고는 눈와 주검밖에 없었다. 난도는 시체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존자들 중 일부는 비행기 잔해에서 유리 조각을 찾아 시신의 살코기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신에서 떼어 낸 살점을 단지 '고기 덩어리'라고 최면을 걸며, 씹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궂은 날씨로 인해 구조 작업이 중단되었다고 알려 왔다. 


난도와 몇몇의 생존자는 직접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서기로 다짐했다. 그들이 구조 원정을 떠난 9일 째 되던날,  평지에 다다를 수 있었으며 처음으로 조난자가 아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난도는 조난 72일 만에 사람 고기가 아닌 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난도는 마주친 사람에게 지역 경찰에 연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크리스마스 직전 12월 23일, 45명의 탑승객 중 16명의 생존자가 헬기를 통해 구조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여러번 제작, 방영 되었으며, '난도의 위대한 귀환'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